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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유학의 향기를 만나다, 전남 장성 필암서원

creator10244 2026. 7. 16. 17:10

목차


    500년을 이어온 호남 유학의 본산, 필암서원의 역사

    필암서원은 1590년(선조 23년) 호남의 유림들이 조선 중기의 대학자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장성읍 기산리에 세운 사우에서 출발했습니다. 김인후 선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성균관에서 학문을 닦았던 인물로,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우리나라 18현 가운데 유일한 전라도 출신 학자입니다. 인종이 승하한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평생 성리학 연구에 매진했고, 그 덕분에 장성의 유학이 크게 융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597년 정유재란 때 서원이 불타 없어지는 아픔을 겪었고, 1624년 인조 2년에 증산동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1662년에는 현종이 직접 '필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고, 이후 수해를 피해 1672년 지금의 황룡면 필암리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필암'이라는 이름은 김인후 선생의 고향 맥동마을 입구에 있는, 붓처럼 생긴 바위 '필암(筆巖)'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네요.

    무엇보다 필암서원이 특별한 이유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1868년) 때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이는 그만큼 필암서원이 지녔던 학문적 권위와 상징성이 컸다는 뜻이겠지요.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7월, 소수서원·도산서원·병산서원 등 전국 9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서원에 들어서며 느낀 것들

    필암서원은 나지막한 산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문필천이 흐르는 넓은 들판을 마주한 평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살문과 하마석, 오래된 은행나무를 지나면 정문인 2층 누각 '확연루(廓然樓)'가 손님을 맞이합니다. '확연'이라는 이름에는 김인후 선생의 마음이 맑고 확연히 공평무사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니, 문 하나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선생의 인품을 짐작하게 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청절당(淸節堂)'이 나옵니다. 다른 서원들은 대개 강당이 정문 쪽을 향해 있는데, 필암서원의 청절당은 특이하게도 뒤편 사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순간에도 늘 선현에 대한 예를 잊지 않도록 배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세심한 구조 하나하나에서 선비 정신이 묻어납니다. 청절당 좌우로는 유생들이 머물던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내삼문을 지나면 김인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우동사(祐東祠)'가 있습니다. 그 곁의 '경장각(敬藏閣)'에는 인종이 세자 시절 직접 그려 하사한 묵죽도 목판과 정조의 어필이 보관되어 있고, '장판각'에는 선생의 문집 목판들이 남아 있어 서원 곳곳이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줍니다.

    담장을 나서면 작은 개울 너머로 유물전시관이 있어, 서원의 역대 원장 명단이나 유생 명부 같은 옛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탁 트인 들판이, 뒤로는 부드러운 능선의 야산이 서원을 감싸 안은 풍경이 참 평온하게 다가옵니다. 시끌벅적한 관광지라기보다는, 조용히 걸으며 사색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방문 방법

    • 주소: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로 184
    • 문의: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061-393-7270 / 장성군청 문화관광과 061-390-7241~2
    • 대중교통: 장성역 또는 장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60, 61번 버스(1일 5회 운행)를 타고 '원필암'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약 10분
    • 서울에서 버스로 이동 시: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장성행 버스가 하루 5회(08:35~16:40) 운행되며 약 3시간 15분 소요됩니다.
    • 자가용 이용 시 서원 인근에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합니다.

    주변 관광지

    • 백양사: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창건된 고찰로, 백암산 자락에 자리해 경관이 빼어납니다. 사찰음식 명장 정관 스님이 수행 중인 곳으로도 유명하며, 가을 단풍철 아기단풍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 홍길동테마파크: 소설 '홍길동전'의 배경이 된 장성의 이야기를 테마로 꾸민 공원으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좋습니다.
    • 축령산(장성편백치유의숲):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을 걸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힐링 명소입니다.
    • 장성호수변길 옐로우출렁다리: 장성호를 따라 걷는 산책로와 출렁다리로, 노란빛으로 물든 '옐로우시티' 장성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김인후 선생 생가터, 맥동마을: 필암서원에서 약 3km 거리로, 선생을 기리는 신도비와 난산비가 남아 있습니다.

    주변 맛집

    • 여름철에는 장성의 콩국수·팥칼국수 맛집에서 시원하게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한우 정육식당: 장성은 한우로도 유명한 고장으로, 정육점을 겸한 식당에서 신선한 한우를 직접 골라 구워 먹을 수 있습니다.
    • 단풍두부(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단풍두부보쌈과 두부전골이 대표 메뉴입니다.
    • 대성산채(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산채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입니다.
    • 상무가든(장성군 삼서면): 오리전골과 한방오리훈제로 알려진 곳입니다.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필암서원. 화려하진 않지만 담장 너머로 보이는 들판과 기와지붕,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선비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백양사와 함께 하루 코스로 둘러보기에도 부담 없는 거리이니, 조용한 사색 여행을 원하신다면 장성 필암서원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