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시간이 멈춘 자리, 경주 옥산서원에 다녀오다

creator10244 2026. 8. 8. 10:33

목차


    내가 고등학교시절에는 수학여행이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가장 많이 여행지로 가던 곳이 경주 였다. 나 역시도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친구들과 같이 잠을 자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경주 하면 대부분 불국사나 첨성대, 동궁과 월지 같은 시내 유적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다. 경주 시내에서 차로 30분 남짓 떨어진 북쪽 안강읍, 자옥산 자락에 조용히 자리한 옥산서원이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 아니라 계곡물 소리와 바람 소리만 남는 곳,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은 하루였다.

    옥산서원은 어떤 곳일까 - 역사적 배경

    옥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이언적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과 함께 '동방오현'으로 꼽히는 인물로, 그의 학문은 훗날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서원 자체가 지어진 건 이언적 사후, 1572년(선조 5) 당시 경주부윤이던 이제민이 창건했고, 이듬해인 1573년 임금으로부터 '옥산'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으며 사액서원이 되었다. 흥미로운 건 이 서원이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전국 47곳 중 하나라는 점이다. 그만큼 조선 후기 내내 영남을 대표하는 서원으로서 위상이 확고했다는 뜻이겠다.

    배치도 전형적인 '전학후묘' 구조를 따른다. 앞쪽에는 공부하는 공간인 강당 구인당이, 뒤쪽에는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사당 체인묘가 자리한다. 그리고 서원 곳곳에는 자그마치 국보 『삼국사기』 완질본을 비롯한 방대한 서적이 보관되어 있어, 현존하는 서원 문고 중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2019년에는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과 함께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사실 옥산서원은 그보다 앞서 2010년에 이미 '양동마을'의 일부로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세계유산 두 번 등재라는 흔치 않은 타이틀을 가진 곳인 셈이다.

    실제로 걸어본 관람 동선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들어가면 가장 먼저 계곡을 만난다. 서원 앞을 흐르는 자계천, 그리고 그 위 너럭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바로 **세심대(洗心臺)**다. '마음을 씻는다'는 이름 그대로, 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벌써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 역락문(정문) → 서원의 첫 관문. 낮은 문턱을 넘으며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 무변루 → 2층 누각 건물로, 서원 건축에 누마루가 도입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계단을 올라 마루에 서면 앞으로는 계곡이, 뒤로는 강학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옥산서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
    • 구인당(강당) → 유생들이 실제로 학문을 익히던 공간. 이곳에는 편액이 두 개 걸려 있는데, 하나는 사액 당시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다. 같은 이름, 다른 필체를 나란히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 민구재 · 암수재(동재·서재) → 유생들의 기숙사. 소박한 문고리 하나하나에도 옛 정취가 남아 있다.
    • 체인묘(사당) → 강학 공간 뒤편, 가장 안쪽에 자리한 제향 공간.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만큼 조용히 예를 갖추고 둘러보았다.
    • 청분각 → 후손들이 1972년에 지은 서고로, 『삼국사기』 등 귀중한 서적이 보관되어 있는 곳.

    동선 자체는 짧다. 천천히 걸어도 40분~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마루에 앉아 계곡 소리를 듣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나처럼 한나절을 훌쩍 보내게 될 수도 있다.

    방문 정보 - 요금 · 관람시간 · 가는 방법

    여행 전에 가장 궁금했던 실용 정보를 정리해본다.

    • 입장료: 무료
    • 주차: 전용 주차장 있음 (무료)
    • 관람시간: 계절에 따라 다르게 운영된다.
      • 봄·가을(3~5월, 9~10월): 09:00 ~ 18:00
      • 여름(6~8월): 09:00 ~ 19:00
      • 겨울(11~2월): 09:00 ~ 17:00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1 일대 (안강읍 옥산리)
    • 찾아가는 법
      • 자가용: 경주 시내에서 약 30분, 포항·영천 방면에서도 접근이 무난하다. 전용 주차장이 있어 편하다.
      • 대중교통: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정류장에서 203번 버스를 타면 옥산서원 방면으로 갈 수 있다. 배차 간격이 넓은 편이라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움직이는 걸 추천한다.

    참고로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는 주말마다 무료 다도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고 하니, 시기가 맞는다면 함께 즐겨볼 만하다.

    옥산서원 주변 가볼 만한 곳

    옥산서원 하나만 보고 오기엔 아쉬운 동네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묶어서 볼 만한 곳들이 있다.

    • 독락당 (도보 이동 가능) — 이언적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머물렀던 사랑채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옥산서원과 세트로 묶어 관람하는 코스가 잘 되어 있다.
    •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도보 이동 가능) —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형태의 석탑으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흔히 보는 석탑과 생김새가 달라 눈길이 간다.
    • 흥덕왕릉 — 신라 왕릉 중에서도 능역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힌다. 다만 대중교통 접근이 어려워 자가용이 있을 때 함께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 양동마을 — 직선거리로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약 8km), 이언적의 후손 가문인 여강 이씨의 근거지이자 그의 고택 무첨당이 있는 곳이라 옥산서원과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하루 일정에 묶어보길 권한다.

    주변에서 먹은 한 끼 - 안강 맛집

    서원 관람을 마치고 나면 슬슬 배가 고파온다. 옥산서원 일대는 관광지 상권보다는 안강읍 현지 상권과 가까운 편이라, 정갈한 한정식부터 편안한 로컬 맛집까지 선택지가 있다.

    • 한정식: 옥산서원길 인근에는 한정식을 내는 식당들이 몇 곳 있어, 서원 관람 후 정갈한 상차림으로 마무리하기 좋다.
    • 외바우 (안강본점):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중간쯤에 위치한, 50년 전통의 안강 로컬 맛집. 대표 메뉴인 버섯한우전골이 진한 국물 맛으로 알려져 있고, 매운맛 단계를 고를 수 있는 버섯낙불삼철판도 인기다. 룸과 아이 동반 공간도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무난하다.
    • 카페: 옥산서원 인근에는 계곡 뷰를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카페들도 있어, 관람 후 잠시 쉬어가기 좋다.

    다녀와서 남는 생각

    옥산서원은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루에 앉아 계곡물 소리를 듣는 것, 그 자체가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되는 곳이었다. 회재 이언적이 400여 년 전 같은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잠시 상상해보게 되는, 그런 여행이었다. 경주 시내의 유적에 이미 익숙하다면, 다음 경주 여행에는 조용한 안강 코스를 한번 넣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