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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터지면 금값이 오른다고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6년 이란 전쟁 발발 후 금값이 17%, 은값이 27.7% 폭락했습니다. 저도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눈을 의심했습니다. 1990년대에 돌반지 하나 3~4만 원에 사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금이 수천 달러를 넘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소식이라니. 전쟁과 금값의 상식이 완전히 뒤집힌 이 사태, 그 이면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구조적 이유가 겹겹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진콜이 불 지른 연쇄 폭락
표면적으로 언론은 세 가지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2024년 27%, 2025년 92% 급등 끝에 온스당 5,594달러 최고가를 찍은 뒤 쏟아진 차익 실현 매물, 이란 전쟁 이후 달러 인덱스가 3% 이상 오르면서 달러로 거래되는 금의 상대적 가격 부담 증가, 그리고 유가 폭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설명만으로는 왜 은이 하루 만에 27.7%나 꺾였는지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핵심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마진콜(Margin Call)의 연쇄 반응입니다. 마진콜이란 레버리지, 즉 빚을 내서 투자했을 때 가격이 떨어지면 증권사가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돈을 넣지 못하면 증권사가 강제로 보유 자산을 팔아버리는 반대 매매로 이어집니다.
금·은 시장에는 레버리지 비중이 유독 높았습니다. 가격이 조금 흔들리자 마진콜이 발동됐고, 강제 매도가 또 가격을 낮추고, 그 낮아진 가격이 또 다른 마진콜을 부르는 악순환이 터진 것입니다. 특히 시장 규모 자체가 금보다 훨씬 작은 은 시장에서 이 충격이 극단적으로 증폭됐습니다. 당시 최대 은 ETF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에서 하루 동안 약 58조 원 규모의 거래가 발생했다고 하니, 그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갑니다.
- 차익 실현 매물: 2년 연속 폭등 후 고점 매도세 집중
- 달러 강세: 이란 전쟁 후 달러 인덱스 3% 이상 상승, 금 수요 감소
- 마진콜 연쇄 반응: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강제 매도가 폭락 가속화
- 은 시장 특성: 규모가 작아 매도 충격 극대화, 하루 27.7% 폭락
종이금과 실물금, 같은 금이 아니다
저도 막연히 금 ETF에 투자하면 금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폭락을 공부하면서 종이금과 실물금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종이금이란 실제 금괴를 보유하지 않고 금 선물이나 ETF처럼 금융 상품 형태로 금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금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 자산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금리 변동이나 달러 강세, 마진콜 같은 금융 시장의 논리에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전쟁이 나도 금융 구조가 흔들리면 종이금 가격은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실물금은 이 폭락 장세에서 오히려 프리미엄이 붙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금 가격은 떨어지는데 금은방에서 실제 금을 사려면 더 비싸게 줘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이번 폭락은 금 자체의 가치가 떨어진 게 아니라, 금 이름을 빌린 금융 시스템이 흔들린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금 매입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힙니다(출처: 한국은행). 각국 중앙은행들은 매달 평균 60톤씩 실물금을 꾸준히 사 모으고 있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실물금을 쥐려는 이유, 저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실질금리가 오르면 금은 고개를 숙인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핵심 열쇠는 실질금리(Real Interest Rate)입니다. 실질금리란 명목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을 뺀 값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금리가 5%인데 물가가 3% 오르면,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실제 이자는 2%인 셈입니다.
금은 이자가 없는 자산입니다. 예금이나 채권처럼 들고 있는다고 이자가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질금리가 높아지는 환경, 즉 예금이나 채권을 들고 있어도 물가를 이기고 남는 수익이 생기는 상황이 되면, 굳이 이자 없는 금을 들고 있을 이유가 줄어듭니다. 금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금값이 하락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란 전쟁은 유가를 폭등시켰고, 유가 상승은 곧바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미룹니다. 금리 인하 기대가 사라지면 실질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그 결과 금의 매력이 떨어집니다. 이란 전쟁이 직접 금값을 떨어트린 게 아니라, 에너지 가격을 통해 실질금리를 끌어올리는 경로로 금값을 압박한 것입니다. 분석에 따르면 전쟁이 없었다면 금값이 온스당 750달러 이상 더 높았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케빈 워시 쇼크까지 겹쳤습니다. 2026년 1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매파 성향의 케빈 워시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워시는 금리를 내리더라도 양적 긴축(QT), 즉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습니다. 양적 긴축이란 중앙은행이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거나 만기 재투자를 중단해 시중 통화량을 줄이는 정책을 말합니다. 이 소식 하나로 금값 9%, 은값 27.7%, 코스피 5.3%가 동시에 흔들리는 금융 시장 전반의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시중 돈이 줄어들면 대출 금리가 오르고, 이는 주택담보대출을 쓰는 가계에도 직격탄이 됩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유가 폭등으로 무역수지 악화와 원화 가치 하락이라는 이중 압박까지 받습니다.
그래도 금의 장기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솔직히 이번 폭락 소식을 들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쉬움이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여러 사정으로 보유하고 있던 금을 대부분 팔았습니다. 그때도 꽤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2024년 27%, 2025년 92% 추가 상승을 지켜보며 입맛이 썼습니다. 그리고 이번 폭락까지. 금 시장이 이렇게 극적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공부해보면, 장기적으로 금값의 방향이 위를 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JP모건, UBS, 도이치뱅크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2026년 4분기까지 금값이 온스당 5,550~6,200달러까지 회복할 것으로 전망합니다(출처: JP모건). 미국의 국가 부채가 36조 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언젠가는 다시 돈을 풀 수밖에 없다는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 논리 때문입니다. 재정 우위란 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가 통화 정책보다 우선시되어,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국채를 흡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황을 말합니다. 이는 달러 가치 하락과 금값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2013년 금값 폭락 당시 정점 대비 40% 떨어지고 7년 만에 회복했습니다. 지금도 유사한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현재 미국 국가 부채는 당시의 두 배 이상입니다. 은의 경우에도 150% 폭등 뒤 27% 폭락했지만, 이후 저점 대비 31% 반등하며 산업 수요가 살아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은은 태양광 패널, 전자 제품 등 산업용 금속으로도 쓰이는 이중성을 지닌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시장은 패닉에 팔고 나면 꼭 후회가 남더라고요. 물론 단기 변동성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금값 등락을 단순히 숫자로만 볼 게 아니라, 그 뒤에 달러의 흐름과 실질금리, 그리고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쟁이 나면 금값이 오르는 거 아닌가요?
A. 통상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이번 이란 전쟁 사례에서는 반대가 됐습니다. 전쟁이 유가를 폭등시키고, 유가 상승이 물가 압력을 키워 금리 인하 기대를 꺾으면서 실질금리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마진콜 연쇄 반응과 케빈 워시 지명 충격까지 겹치면서 금값이 17%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이 금값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경로를 거칩니다.
Q. 금 ETF랑 실물금이 뭐가 다른 건가요?
A. 금 ETF나 금 선물은 종이금이라고 불리며, 실제 금괴를 보유하지 않고 금융 상품 형태로 금에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금리 변동이나 마진콜 같은 금융 시장의 충격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전쟁 중에도 가격이 폭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실물금은 이번 폭락 장에서 오히려 프리미엄이 붙었습니다. 투자 목적이라면 종이금도 활용할 수 있지만, 진짜 위기 대비가 목적이라면 실물금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Q. 마진콜이 왜 금값 폭락을 이렇게 키우나요?
A. 마진콜은 레버리지 투자자가 가격 하락 시 추가 증거금을 내지 못하면 증권사가 강제로 매도하는 구조입니다. 이 강제 매도가 가격을 더 떨어뜨리고, 낮아진 가격이 또 다른 마진콜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시장 규모가 작은 은 시장에서는 이 충격이 극단적으로 증폭되어 하루 27.7% 폭락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레버리지 비중이 높은 시장일수록 폭락의 속도와 깊이가 과장되는 이유입니다.
Q. 지금 금을 사도 괜찮을까요?
A. 저는 투자 조언을 드릴 위치는 아닙니다만, 구조적으로 보면 미국의 재정 적자와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기조는 장기 금값 상승을 지지하는 배경입니다. JP모건, UBS, 도이치뱅크 등은 2026년 4분기까지 온스당 5,550~6,200달러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다만 단기 변동성이 크다는 점, 그리고 투자 목적인지 위기 대비 목적인지에 따라 종이금과 실물금 중 어느 쪽이 맞는지가 달라진다는 점을 먼저 정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결론
1990년대에 3만 원짜리 돌반지를 들고 다니던 기억이 있는 저로서는,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를 넘고 또 폭락하는 이 흐름이 새삼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대로 공부해보니, 금값 등락은 단순히 금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달러의 힘, 실질금리, 레버리지 구조,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까지 세계 경제 전체가 맞물린 결과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올해 하반기가 5개월 남짓 남았습니다. 금값의 방향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단순한 투자 공부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나침반을 읽는 연습입니다.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뉴스 속 숫자 뒤에 어떤 구조가 작동하는지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것이 결국 자신의 자산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